폭포수를 맞으며 잡념을 없애고, 몸을 불려 때를 벗긴다. “디지털 샤워실”은 현대인의 작업환경에 대한 기술철학과 역사적 탐구이며 예술적 질문이다. 온라인 신경망을 갖춘 현대인의 몸은 특별한 정화가 필요하다. 현대인의 몸은 기계와의 상호작용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허리, 목, 어깨 등등이 아프다. 과연 인간공학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온 걸까?

1900년대 초 길브레스 부부가 동작연구를 통해 이른바“표준인간”을 정의했다. 그 뒤로 우리는 알고 있다. 모든 작업은 바른 자세로, 장시간의 운전 뒤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휴식하는 법을. 그러나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기계와 작업하는 동안 어느 새 노동하는 몸은 놀이하는 몸을 잊어버렸다. 격무에 시달리며 움츠러든 어깨와 굽은 허리에는 걱정, 불안, 우울이 가득하다. 인간공학은 통통 튀는 발재간과 두 팔 벌려 만세하는 몸이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한편, 포스트휴먼인 우리에게 아바타처럼 몸을 갈아탈 기술은 없다. 미셸 푸코가(프루스트를 빌어) <유토피아적인 몸> 도입부에서 밝히듯, 우리는 몸을 벗어날 수 없다. 말하자면 몸이란 내리는 것이 불가능한 자동차와 같다. 몸을 운전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인 후에는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해 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샤워를 하고 잠을 청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피로가 있다. 그것은 각자의 상상, 계획, 유토피아, 미래를 작업하다 생긴 피로이다.

달리 말해 현대인은 가상공간을 바라보면서 몸으로 기계(또 다른 몸)를 조종하는 복잡한 운전을 하고 있다. 가상공간을 돌아다닌 후에는 특별한 휴식과 정화가 필요하다. 이것이 실리콘밸리에서 기술혁신과 함께 멍때리기, 명상, 요가, 디지털 디톡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일 것이다.

모든 혁신에는 탈교육이 필요하다. 매년 생겨나는 새로운 기술로 바뀌는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게 많다. 배우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그만큼 잊어버려야 하는게 있다는 것을 자주 놓친다. <디지털 샤워실>은 우리가 알지만 자주 놓치고 있는 현대인의 몸과 작업환경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다.